창덕궁 수정전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《동궐도》 수정전 |
1. 소개 [편집]
2. 역사 [편집]
수정전 현판 |
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. 다만 《궁궐지》에 ‘인조반정으로 궁궐 안이 모두 탔으나 수정당만 남게 되었다’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아 적어도 광해군 때에는 지은 듯 하다.
효종이 1654년(효종 5년)에 창경궁 통명전에 머물던 자의대비 조씨(장렬왕후)[1]가 아프자 창덕궁에 모시려고 기존의 있던 건물을 수리, 증축하여 고쳐지었다. 정언[2] 이상진의 상소문을 볼 때 원래는 가볍게 놀던 공간이었던 듯 하다.#
그러나 병이 잘 낫지 않자 자의대비는 옛 총부로 거처를 옮겼다. 하지만 그 곳이 살기 불편하여 곧 수정당으로 돌아왔고, 이에 효종은 불과 1년 뒤인(...) 1655년(효종 6년)에 '수정당이 산을 등져있어 비좁다'면서# 만수전이란 대비전을 따로 지었다. 만수전 완공 후 자의대비는 그 곳에서 머물렀다.#
정조 시기에는 정조의 법적 할머니[3] 예순대비(정순왕후)가 사용했으며 1794년(정조 18년) 12월에는 예순대비와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에게 책보와 책인을 이 곳에서 올리면서 이름 역시 ‘당(堂)’보다 더 위계가 높은 ‘전(殿)’을 붙여 수정전(壽靜殿)으로 고쳤다.
1813년(순조 13년)에는 수정전의 행각이 불탔으나 수정전 본채는 무사했다. 1881년(고종 18년)에는 수정전 영역을 정비했고#, 같은 해 이름을 함녕전[4]으로 바꿨으나#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로 불 타 사라졌다.# 직후 바로 복구 공사에 들어갔지만 고종이 중단시켰고# 조선 멸망 때까지 끝내 재건하지 않았다.
1891년(고종 28년) 함녕전의 별당들을 경복궁으로 옮겨 지었다. 그 중 하나가 현재 경복궁 건청궁의 서쪽에 있는 중국풍 건물 집옥재이다.
3. 구조 [편집]
4. 여담 [편집]
- 1800년(정조 24년) 6월에 정조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'수정전'이었다.# 당시 수정전에 거처했던 예순대비(정순왕후)를 찾은 것. 부른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지만 정황 상 뒷일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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